[경향신문] ‘배 곯는 겨울철새’… 개체 수 감소·멸종 우려

김승호 김승호
작성일 2010-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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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정부·지자체 ‘먹이터’ 사업비 반토막

올겨울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될 것 같다. 정부와 지자체의 철새 먹이터 조성 사업비가 절반으로 깎였기 때문이다.

2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자체가 정부 지원을 받아 실시하는 ‘생물다양성관리계약’ 2010년 사업비가 지난해 66억6700만원에서 절반인 33억3300만원으로 삭감됐다. 사업비가 반토막 나면서 생물다양성관리계약에 따라 조성되는 철새 먹이터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은 겨울철 철새도래지 주변 논밭을 쉼터로 조성하거나 철새 먹이가 되도록 알곡·볏짚 등을 수확하지 않고 남겨두는 제도다. 지자체는 참여 농가에서 시세의 1.5배 가격으로 볏짚을 사주고, 쉼터 1㏊당 60만원을 지원한다. 생물다양성이 우수한 지역의 생태계 보전을 위해 2002년 도입된 이 제도는 사업 규모가 매년 확대돼 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축소됐다.

환경부는 올해 철새 먹이터로 조성되는 논밭이 2008년 8688㏊의 절반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파주시의 경우 사업비가 1억1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줄면서 면적도 240㏊에서 142㏊로 감소했다. 지원금 없이 무조건 철새를 위해 벼·볏짚을 수확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임진강 하구의 파주시는 멸종위기 2급인 두루미 200여마리 등 48종 1만3000여마리의 겨울 철새가 매년 찾아오는 곳이다.

가창오리 군무로 유명한 천수만 인근의 충남 홍성군도 철새 쉼터의 규모를 지난해 325㏊에서 올해 10분의 1인 34㏊로 줄였다. 한강 하구를 끼고 있는 경기 고양시는 철새 먹이터 면적을 줄일 수 없어 시비 4000만원을 긴급 편성해 지난해 규모(73㏊)를 겨우 유지했다.

생물다양성관리계약 사업비가 반토막 난 것은 지난해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이월액이 높다는 이유 등으로 국비 지원금이 신청액의 절반인 10억원으로 깎였기 때문이다. 국비와 지방비가 3 대 7로 연동해 편성되기 때문에 국비가 깎이면 지방비도 깎여 사업비가 줄어든다. 환경부 관계자는 “월동 철새가 되돌아가는 내년 2월에 완료되는 사업 특성 때문에 이월액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내년도 국비 지원금 예산은 올해보다도 더 줄어든 9억원으로 신청된 상태다.

철새 먹이터 축소는 철새의 생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김승호 DMZ 생태연구소장은 “겨울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에서 찾아온 철새들에게는 논밭의 알곡과 볏짚이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먹이가 부족해지면 일부 철새는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어린 개체들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 사업비가 갑자기 축소되면서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지원 대상에서 누락되거나, 계약 대상에서 탈락한 농민들이 철새 먹이로 쓰지 못하도록 논밭을 갈아엎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이터와 같은 서식지 보호가 가장 중요하다”며 “4대강 사업 등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먹이터 축소까지 계속되면 철새 개체수의 감소, 나아가 멸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생물종다양성의 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1012030004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