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의 둠벙의 생태적 가치

김승호 김승호
작성일 2021-07-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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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보다 생물다양성 풍부한 서부 민통선에 고속도로, 왜?



2020.09.12 18:08 입력




서부 민간인출입통제지역(CCZ)의 인공습지인 ‘둠벙’들이 국내의 주요 보호습지들보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필요가 입증된 셈이지만 국토교통부가 해당지역에 불필요한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 중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민간연구기관인 DMZ생태연구소 등 연구진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학술지 ‘환경과 생태’ 8월호에 게재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2018년 8월 15일부터 9월 22일까지 서부 민통선 북쪽 지역의 둠벙 가운데 경기 파주에 있는 둠벙 143곳을 선정해 생물상을 조사한 결과 총 59과 192종의 저서무척추동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저서무척추동물이란 곤충, 조개류 등 가운데 물속 바닥이나 수초 주변에 사는 척추가 없는 동물을 말한다.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둠벙에서 확인된 물방개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제공.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둠벙에서 확인된 물방개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제공.

연구진에 따르면 서부 민통선 둠벙들에서는 연천 물거미서식지(26과 60종), 강화 매화마름군락지(29과 48종), 대암산 용늪(36과 61종), 울주 무제치늪(23과 64종), 창녕 우포늪(59과 135종) 등 정부·지자체가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습지들보다 더 많은 생물이 확인됐다. 역시 보호대상인 제주 동백동산습지(22과 60종), 제주 물영아리습지(26과 58종) 역시 서부 민통선 둠벙들보다 적은 수의 저서무척추동물이 확인된 바 있다. DMZ생태연구소 김승호 소장은 “조사 면적, 시기 및 반복 횟수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일대 둠벙은 국내 주요 보호습지에 준하거나 더 높은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종 다양성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DMZ생태연구소 등이 생물상을 조사한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내 경기 파주의 둠벙 위치. DMZ생태연구소 제공.

DMZ생태연구소 등이 생물상을 조사한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내 경기 파주의 둠벙 위치. DMZ생태연구소 제공.

연구진에 따르면 192종은 국내 논 생태계에 서식하는 저서무척추동물 중 물벼룩류와 선충류를 제외한 200종의 96%에 달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국내 습지에 서식하는 저서무척동물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확인된 것이다. 연구진은 조사 과정에서 애기뿔쇠똥구리, 금개구리, 물방개, 물장군, 대모잠자리 등의 멸종위기 곤충이 서식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둠벙은 전통적인 농법에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지하수를 가두어 만든 인공습지를 말한다. 1970년대 이후 다목적농촌용수 개발사업, 배수 개선사업 등으로 관개수단이 개선되면서 둠벙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내에서는 대규모 관개수로를 건설할 수 없는 탓에 오늘날에도 이용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둠벙과 같은 소규모 습지가 생물다양성 증진 및 보전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와있으며 국내에서도 이번 논문처럼 둠벙의 가치를 주목하고, 새롭게 둠벙을 조성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둠벙에서 확인된 물장군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제공.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둠벙에서 확인된 물장군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제공.

서부 민통선 지역은 멸종위기 조류 12종이 상시적으로 관찰되고,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의 주요 서식지역과도 중첩되는 곳이기도 하다. [단독]'육지의 4대강' 민통선 고속도 예정지서 천연기념물 다수 확인

그러나 이 지역은 최근 국토교통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도 실시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 중인 문산-도라산고속도로 건설사업으로 인해 훼손될 위기에 처한 상태다. 국토부는 남측구간인 문산읍에서 장단면 도라산역까지 왕복 4차로 11.8㎞의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제출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서’에 대해 환경부는 환경 훼손 우려가 적은 노선을 택하는 등 내용으로 조건부 동의를 했다. 이에 대해 파주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비무장지대(DMZ) 인근 생태계 파괴를 용인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둠벙에서 확인된 대모잠자리 유충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제공.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둠벙에서 확인된 대모잠자리 유충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제공.

환경부가 조건부동의 처리를 했을 당시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와 파주·북파주 어촌계는 성명을 내고 “정부는 DMZ 일원의 생태를 망가뜨리고 농어민 생존의 터전을 빼앗는 고속도로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들과 주민들은 문산~도라산 고속도로가 생기면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이북 지역을 생태적으로 단절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땅 위의 4대강사업’이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긴급하게 필요하지도 않은 고속도로를 세우면서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실시하지 않는 것에 대해 현 정권의 역점사업이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시민단체, 주민들은 국토부가 “필요하지도 않은 고속도로를 현 정부 임기 내에 착공하려다보니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을 훼손하려 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2018년 기획재정부는 국토교통부가 남북철도경협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신청을 받아들인 바 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우려를 낳고 있는 조건부 동의 처리에 대해서도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지난 7월 환경부에 보냈다. 환경부는 지난달 초 회신을 통해 노선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처리를 개발주체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일각에서는 같은 정부 부처인 국토부가 환경부를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다만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조건부 동의, 부동의 처리 등에 대해 개발주체가 수용하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긴 하다”고 설명했다.

DMZ생태연구소 등 연구진은 “다른 지역의 둠벙이나 보호습지와 비교할 때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일대 둠벙에서 더 다양한 분류군이 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서부 민통선 일대 둠벙의 생물다양성 보전계획을 수립할 때 특별히 종 다양성이 높은 몇 개 둠벙만을 보전하는 접근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둠벙을 포함한 수서생물의 이동성 서식지 전반의 연결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